Photo:흑선의 내항과 사가번의 근대화

21흑선의 내항과 사가번의 근대화

1853년 6월, 미국의 페리함대가 개국을 요청하며 우라가(浦賀)에 내항하였고, 그 다음 달에는 러시아의 푸차친함대가 나가사키에 입항하였습니다. 흑선의 내항에 충격을 받은 막부는 에도만 경비의 강화를 위해 에도만 내에 대포를 설치할 수 있는 포대를 만들기로 하였고 그 대포의 제조를 사가번에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요청을 받은 사가번에서는 1853년 다후세(多布施)에 새로이 반사로를 만들어 막부용 대포 50문을 제조하게 됩니다. 또한 막부는 구미 여러 나라의 위협에 대항할 수 있는 유럽형 근대식 해군의 창설을 위해 나가사키에 해군전습소를 개설하게되며, 사가번에서도 많은 전습생이 참가하였습니다. 1858년, 결국 막부는 미국・네덜란드・러시아・ 영국・프랑스 등 5개국과 수호통상조약을 맺게되고 200년 이상 동안 이어진 막부의 쇄국정책은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또한 메이지유신 후에 발발한 신정부군과 구막부군의 전투에서는 사가번의 과학기술이 크게 힘을 발휘해 신정부군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