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의역사
사가 10대 영주 나베시마 나오마사 (鍋島直正)
사가 번의 제10대 영주 나베시마 나오마사(鍋島直正)는 17세에 영주가 되어 탁월한 리더쉽을 발휘하여 과학기술의 도입과 행재정 개혁, 인재육성 등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사가성의 종두(種 痘)
사가 번에 천연두가 크게 유행하였을 때, 예방으로 우두(牛痘)의 종두(種痘)가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안 나베 시마나오마사(鍋島直正)는 두묘(백신)를 네덜란드로부터 들여올 것을 명하고, 사가성에서 아들 준이치로(淳一 郎) 나오히로(直大)에 접종하였습니다. 그 후 종두는 전국에 보급되었습니다.
대포제조
사가 번은 대포를 제작할 목적으로 네덜란드의 기술서를 번역하여 이론과 구조를 배우고, 일본에서 최초로 "반사로" (反射炉)를 만들었습니다. 멤버로는 도공이나 주물공 등 신분에 관계없이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였습니다.
에도만 (江戸湾) 방어
1853년 우라가(浦賀) (현재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 아메리카 페리 함대가 내항하였습니다. 막부(幕府)는 외교 교섭을 진행하는 한편 현재 도쿄 시나가와 앞바다 (東京品川)에 포대를 구축하여 에도 만을 지키고, 그 곳에 구비할 대포를 당시 최고 기술을 가진 사가 번에 주문하였습니다.
철도의 보급
일본에 철도를 보급한 것은 사가번 출신인 오쿠마시게노부<大隈重信> (총리대신을 두차례 역임. 와세다 대학을 설립한 인물)입니다.
인물
19세기 일본은 메이지 유신( 明治維新)이라는 전환기를 계기로 국가의 구조가 무사 (武士)의 세상이었던 봉건적 에도시대에서 근대적인 메이지 시대로 변한 시대였습니다. 사가 출신의 사람들은 도쿄로의 수도이전, 홋카이도 (北海道) 개척, 의학 및 사법제도, 교육제도 확립 등 넓은 분야에서 활약하였습니다.
에도시대 (江戸時代)란?
에도시대란,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 (徳川家康)가 군사적으로 최고 권력자인 장군 (将軍)이 되어, 에도(현재의 도쿄)에 막부 (幕府)라 불리는 정권을 확립해서부터 1868년 붕괴되기 전까지 약 260년간을 말합니다. 장군(将軍)은 지방의 무사(武家) 영주인 다이묘(大名)를 계속 지배했는데, 이것은 에도성 주변에 각 다이묘(大名 )의 저택을 마련하여 가족을 인질로 잡아 다이묘(大名)에게 정기적으로 장군(将軍)의 경의표시 방문을 의무화한 참근교대(参勤交代)제도가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한 대외적으로도 그리스도교의 금지 및 외국과의 교류를 네덜란드, 중국, 조선, 류큐(오키나와)로 제한하는 등, 폐쇠적 관리 사회를 구축한 결과 약 260년간 평화 시대가 계속되어 독특한 사회와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사가 번( 佐賀藩)이란?
번(藩)이란,에도시대 각 지역의 다이묘(大名)가 지배하고 있던 영지 혹은 지배 기구의 총칭으로서,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1871년 현(県)이 설립되기 전까지 이어졌던 제도입니다. 사가 번 (佐賀藩)은 전국에 약 250 개의 번(藩) 중에 도쿠가와 가문(徳川家)등을 제외한 여덟번째 규모로 나베시마 가문(鍋島家) 나오시게(直茂) ・가쓰시게(勝茂) 부자에서 제11대 나오히로 (直大)까지에 걸쳐 통치되었으며,영지는 현재의 나가사키현(長崎県)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사가 번 (佐賀藩)은 1642년 막부(幕府)로부터 명을 받은 이래 네덜란드・중국과의 유일한 창구로 있던 나가사키항(長崎港) 경비를 행사하였기 때문에 해외 정세를 신속히 판단하였으며, 막부 말기(幕末)에는 다른 번(藩)보다 앞서 과학기술을 도입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