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나가사키경비와 사가번의 근대화 조짐
사가번은 네덜란드・중국과의 유일한 교류창구였던 나가사키항의 경비를 맡아왔기 때문에 해외의 정세를 가장 먼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19세기가 되면서 산업혁명을 일으킨 영국 등의 함선이 아시아로 진출하게 되고, 쇄국정책을 펼치던 일본에도 여러 나라의 함선이 개국을 요구해 왔기 때문에, 사가번은 나가사키항의 경비를 더욱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1808년, 영국함선이 네덜란드의 함선으로 위장하여 나가사키항에 입항해 일으킨 파에톤호사건이나, 중국이 영국에 패하며 막을 내린 아편전쟁(1840~42)은 사가번의 위기감을 한층 증대시켰습니다. 이를 계기로 사가번은 1850년 사가성하에 위치한 쓰이지(築地)에 일본최초의 반사로를 설치하게 되었고,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철대포 주조에 성공하며 근대화로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습니다.